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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식 수술은 편집자에겐 독?
등록인 : 어드민 |

 

“두 가지 글자를 보여드립니다.

빨간색 바탕의 글자가 더 잘 보이세요, 아니면 초록색 바탕의 글자가 더 잘 보이세요?”


“음……. 빨간색이요. 아니아니, 초록색이요.”

.

.


“색깔을 보지 마시고요, 글자만 보세요. 어느 쪽이 잘 보이세요?”


시력 검사에서 제일 애매하고 어려운 질문입니다.

확신이 서질 않으니까요. 보여줄 때마다 다른 답을 해도 저는 밝은 세상을 볼 수 있겠지요?


무엇이 잘 안 보일 때면 눈을 찡그리지 않고 바로 손이 눈가 언저리(정확하게 말하자면 안경이 있는 곳)에서 맴돕니다.

안경을 좀 바짝 올려 쓰면 글자가 잘 보이거든요.


안경을 쓰기 시작한 건- 초등학교 6학년부터.

누워서 책 읽던 습관 때문이었을까요?

어렸을 때 누워서 보는 독서대가 나왔다면 저는 안경을 쓰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여하튼 제 학창시절 사진을 보면 모두 안경, 안경, 안경.

눈을 뜨자마자 처음 찾는 것도 안경, 안경이 문신처럼 새겨진 나날들을 보냈지요.


안경을 벗고 콧잔등에 와닿는 싱그러운 바람을 느끼고 싶다, 고 느낀 적도 여러 번이었지만

시력 교정 수술을 받고 싶진 않았어요.

돈도 돈이지만 겁이 났거든요.

각막을 슬라이드로 벗겨낸다는 사실이 무서웠습니다.


겁도 좀 없어지고 기계가 좋아졌다고는 해도 여전히 수술할 마음이 없었어요.

활자 노동자라고 하는 편집자였으니까요.

눈을 혹사시키니 좋은 시력이 다시 떨어질 것이라는 걱정이 컸어요.

하루에도 몇 시간 동안이나 콩알만 한 글자를 보는 직업군의 특성상 수술을 잘 받아도 잘 관리할 자신이 없었던 거죠.

하지만 친구들도 수술 받은 뒤 큰 만족감을 보이고 편집자 중에서도 수술 받은 분이 생각보다 많아서 수술을 결정했습니다.


오른쪽 눈에 경미한 녹내장이 보여요. 수술 불가능하진 않은데 수술 뒤에 경과를 지켜봅시다.

또 혹시나 해서 말씀 드리는 거지만, 눈이 상하로 잘 벌어지지 않아 라식 기계가 들어가지 못할 수도 있어요.

그렇게 되면 라섹으로 진행합니다.

병원에서 눈 검사 후 받은 상담에서 들은 말입니다.

녹내장 소견이 충격이었던지라 라식 기계가 들어가기 힘들다는 의견은 가볍게 넘겼지요.


다행히 녹내장은 신경세포가 작아 그렇게 나온 것일 뿐 아무런 이상이 없다란 결과가 나왔지만

수술을 들어갔는데 정말 라식 기계가 들어가지 않더군요.

제가 받은 크리스탈 라식입니다.

정말로, 가장 빠르고 안전하고 편안하기까지 한 것이냐..

10초 라식은 (후후후, 수술한 기계 삽입 실패할 적마다 원장님이 짜증을 내면서 재시도한 간격이 10초 ㅜㅜ)

결코 편안하지는 않았습니다요.

여러 번의 재시도 끝에 간신히 기계를 밀어넣어 라식을 끝냈습니다. (후아~)

그렇게 겁을 줬던 마취 풀린 뒤에 고통은 크지 않았어요.

아프다는 느낌보다는 눈썹이 서너 개 들어갔을 때의 시린 정도?


그것보다는 처음 눈을 떴을 때의 충격이란 !


오른 쪽 눈은 깨끗했지만 왼쪽 눈은 완전 피바다.

(왼쪽 눈은 더 기계가 안 들어가서 안구 고정하는 장치도 바꾸고 2배는 더 재시도 했거든요)

그나마 정말정말 다행인 건- 안경 없이 내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거!

놀란 저를 보고는 가족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바로,

엑 소 시 스 트

선글라스에 잠옷 원피스를 입고 매일 침대에 머리 산발인 채로 누워 있으니 영락 없군요.

게다가 강렬하게 충혈된 눈까지, 별명 하나 추가되는 건가요 .. 오잉

가족들에게 이런 악한 말을 듣고 찾아간 반려 동물은

택배오면 가장 반기는 대상이 우리집 고양이입니다. 택배 박스에 환장함다.

낮이나 밤에도 달콤한 꿈나라.

암수 서로 정답게 노니는데,

외로워라, 이 내 몸은 뉘와 함께 돌아갈꼬

저녁에야 들어오는 가족과 잠만 자는 고양이.

이제 회복 기간 동안은 철저히 혼자입니다.

혼자 남았을 때 시간을 보내던 여가 활동이 모든 게 눈 활동이더라고요.

영화 보기, 독서, 웹서핑 -

라식 수술 뒤에 밀려오는 철저한 외로움(獨)..

독(獨)이 정말 독(毒)으로 퍼지기 전에 책을 읽어야(讀) 하는데!!

눈을 쓰질 못하니.. 결국 저는 저만의 친구를 만듭니다.

 

캐스트 어웨이에서 배구공 윌슨 친구, 는 아니고-

제 침대에 있던 큰 리락쿠마 인형이 일주일 동안 제일 가까운 친구였어요.

동그란 귀에 오늘의 일상과 지금 느낌들을 조잘조잘 이야기하면 마음이 즐거웠거든요.

역시나 인간은 사회적 동물인가 봅니다.

결국 독서라는 행위도- 낯 모르는 누군가와 대화하는 것이니까요.


수술 받은 일주일 뒤, 지금은 모든 게 잘 보입니다.

실핏줄 터진 것도 잘 아물고 있고, 콩만한 글씨도 잘 보여요

다만 눈부심이 있어서 선글라스를 쓰고 있지요.

(컴퓨터 모니터볼 때 이따끔씩 눈이 시큰거려 업무 중에도 선글라스를 끼고 있지만요)

정말 새로운 세상입니다 ㅎㅎㅎ

시력교정술을 둘러싼 여러 가지 걱정이 있겠지만 그럼에도 수술 받는 쪽이 훨씬 낫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라식은 정말 하루만 지나면 차츰 시력이 회복되니까

이번 광복절 연휴나 추석 연휴를 노려보심이 어떨런지요.

(수술 부작용이나 유의 사항들도 충분히 알아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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